사업 모티프2/이론&개념

미국 한국 이사회 비교

무말랭이 2022. 4. 4. 19:42

미국식 이사회 중심 경영 vs. 한국식 창업자 중심 경영

1. 브릿지바이오와 오름테라퓨틱에 이어 루닛이 미국형 이사회 구조로 전환한다는 소식이다. 브릿지와 오름은 이미 사내이사 : 사외이사 비율이 2 : 3이고, 루닛은 이번에 2 : 2가 되었지만 추가로 1명의 사외이사를 영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https://www.lunit.io/ko/news/%EB%A3%A8%EB%8B%9B-%EA%B8%80%EB%A1%9C%EB%B2%8C-%ED%97%AC%EC%8A%A4%EC%BC%80%EC%96%B4-%EC%A0%84%EB%AC%B8%EA%B0%80%EB%A1%9C-%EC%9D%B4%EC%82%AC%ED%9A%8C-%EA%B0%9C%ED%8E%B8-%EA%B8%80%EB%A1%9C%EB%B2%8C-%EA%B2%BD%EC%98%81-%EC%86%8D%EB%8F%84

2.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여러 면에서 다르고 각 차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한데, 그 중 아마 가장 중요한 차이는 스타트업의 거버넌스 구조 및 이와 연결된 벤처캐피탈(VC)의 역할일 것이다. 미국은 이사회에서 모든 경영상의 주요 결정을 하는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인 반면, 한국은 창업자가 주요 의사 결정을 하고 이사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창업자 중심 거버넌스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3. 미국의 경우 VC 투자를 몇 라운드 받으면 VC의 지분이 창업자를 비롯한 기업 내부 인력의 지분보다 커지고 50%를 넘기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사회도 지분 구조를 반영하여 사외이사가 더 많아진다. 이때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그 스타트업에 투자한 VC들이다.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에서 스타트업 경영의 주요한 이슈들을 모두 논의하고 결정한다. 여기에는 창업자 CEO를 교체하는 것도 포함된다. 영화 <인턴>을 보면 창업자인 앤 해서웨이가 이사회의 CEO 교체 요구를 받고 인턴인 로버트 드 니로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것이 미국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4. 그래서 미국에서 VC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스타트업에 대한 지배력이 축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버드의 Wasserman 교수가 쓴 <창업자의 딜레마>에서는 이를 “지배력 vs 부” 사이의 딜레마로 묘사했다. VC의 투자를 받으면 돈은 들어오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지배력은 잃게 되고, 지배력을 고수하면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9553/ac/magazine

5. 그렇다면 미국식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의 장점은 무엇일까? 의사 결정의 투명성, 창업자의 실수나 독단적 의사 결정의 견제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이 풍부한 업계의 고경력 전문가나 VC의 경영 참여를 통해 신생 스타트업도 매우 숙련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VC는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 경영에 필요한 방대한 암묵지를 축적한 전문가들이다. 이는 마치 제조업과 엔지니어링 산업에서 장기 근속한 장인적 숙련공이나 엔지니어에게 생산과 설계에 관한 암묵지가 축적되는 것과 같다. 이정동 교수는 <축적의 길>에서 이런 사람을 ‘고수’로 칭하고 고수가 기업의 혁신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제조업과 엔지니어링 산업에서 학습이 축적되는 곳(locus of cumulative learning)이 ‘고수’라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VC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6. 물론 개별 스타트업 차원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VC나 업계 전문가가 이사회에 참여하더라도 그 기업은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평균적인 성공률을 본다면, 고경력 VC나 업계 전문가의 이사회 참여가 보편화된 생태계가 더 성공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한 논문이 있을까 찾아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찾지를 못했다.

7. 그러나 이런 미국식 스타트업 거버넌스가 창업자 중심 경영에 익숙한 한국에도 이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스타트업 생태계의 원조가 미국이고 여러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 스타일이 절대 선이 될 수는 없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로는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측면에서는 미국식 거버넌스가 더 유리한 요소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 구조를 먼저 도입한 세 기업이 좋은 성과를 보여주면 같은 시도를 하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점차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운 길을 먼저 들어선 세 기업에게 응원을 보낸다.

=========== 추가 ===========

8. 한국의 경우 창업자 중심 경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관련 제도와 문화도 창업자에게 권한을 많이 주는 형태인데, 이에 대한 균형을 잡기 위해 책임도 많이 묻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태펀드 표준계약서 상의 "이해관계인" 조항이다. 이해관계인이란, 기업이 특정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법인과 함께 연대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공정거래법상의 "동일인" 혹은 재벌 "총수"의 스타트업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미국에 비해 투자계약서에 창업자에게 불리한 조항들이 많은데, 이익잉여금의 상환조건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코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창업자 지분을 20% 이상 유지하는 것이 권고되고 있고, 창업자가 IPO 이후에 공개 시장에서 지분을 파는 것도 금기시 되어 있다. 엘론 머스크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은 최대주주가 공개 시장에서 지분을 파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