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크립토(분류포기)

펌, 루나에 대한 의견

무말랭이 2022. 5. 15. 18:31

[루나의 붕괴와 모두에게 새겨진 상처에 대한 길고 긴 잡생각]

Disclaimer : 루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루나로 전재산 날리지 않았습니다. 권도형이란 분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잘 모르는 얘의 헛소리이니 무슨 이유이든 노여워는 마세요.

1. 루나의 붕괴

루나의 붕괴는 혁신으로 평가받는 탈중앙화 된 금융, 잘 설계된 알고리즘 기반의 프로토콜 경제가.. 악한 의도를 가진 자본의 압력이 살짝만 인간 본성을 흔들어주면 바벨탑처럼 우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이제 꽤 성숙했다며, 크립토 씬의 참여자들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CeFi에 비견하며 자신 있게 권고(ex. 은행에서 풀 대출해서 앵커에 넣는 게 무조건 이익이야)할 수 있었던 DeFi는, 여전히 믿음에 믿음이 더해지며 겹겹이 쌓인 확증편향의 신뢰도 위에 지어진 연약한 구조체였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이란 존재가 인간의 악의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철인처럼 시장의 중립성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한 편 꾸준히 투자금을 유치하며 루나틱 커뮤니티를 졸업으로 끌고 가고, 의심과 지적은 과감한 일갈로 내쳐버리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중앙에 모시고 신봉했다. 그런 중에 기존 금융의 서킷브레이커 같이 시스템 실패를 막아주는 방어 수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하게 살피려 하지 않았다. ‘알고리즘 안에 무언가 대비가 있겠지, 정 어려우면 도권이 알아서 할 거고!’하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디파이 2.0을 자칭하던 올림푸스 다오의 붕괴와 엄청난 신뢰기반 커뮤니티의 상처를 봤음에도, 우리는 그저 “유어 맘, 오비어슬리”를 리트윗 하며 드러난 불안 위에 반창고를 한 겹 붙이기만 하면 되었나 보다.

2. An algorithm can't be evil, but…

루나-UST의 알고리즘은 UST에 대한 시장 공급(거래를 위한 매도 수량)이 순간적으로 폭증하여 가격이 하락할 경우 루나를 발행해 교환비를 조정한다. 약소한 UST 가격 변동 상황에서는 참여자들이 루나를 의심하지 않고, 아주 작은 차액이라도 루나 교환비와 시장 가격의 차이를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의해 UST 페깅이 유지된다.

하지만 패닉 셀링과 같은 속도로 교환비가 깨지면 알고리즘은 루나 발행량을 리미트 없이 시중에 발행시켜 UST가격을 유지하려 한다. 알고리즘의 제 1목표는 UST의 가격 페깅이므로, 당연히 루나의 가격 방어란 그 대칭점에 서있다. UST의 페깅 붕괴는 루나를 들고 있는 홀더들에게 당연히 긴급탈출 신호이고, 이들이 대탈주를 벌이며 루나를 시장 가격에 던지기를 시작하면 UST 디페깅과 루나의 가격 하락은 서로 쌍끌이처럼 0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서로 쌍끌이 하면서 시가총액을 키워 왔던 것처럼…

안타깝지만 알고리즘은 잘 작동했다. 원래 의도한 계획대로, 원래 만들어진 목표대로 순수하게 작동을 계속했을 뿐이다. 아쉬운 건 하나의 또 하나의 신뢰 기계였던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대표가, 중앙화 된 방식으로 어떻게든 이 붕괴를 막지 못했다는 것뿐…

3. 규모의 안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레이스

나는 개인적으로 탈중앙화 된 금융(프로토콜화 된 금융)이 결국은 새로운 금융체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해 왔다. 그 기본적인 조건은 "소수의 참여자가 전체 네트워크의 안정성을 해칠 수 없을 만큼 크고 분산화된 금융의 규모"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중앙화 금융 체계가 그 정도의 규모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번 공격과 같이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는 사건에 대해 상처는 좀 받더라도 본진을 방어할 수 있는 서킷브레이커만 있으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루나-ust에는 그러한 기본적인 제동장치와 회생 프로토콜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지금 정도의 속도라면 약간의 현실적인 예치이자를 지급하는 등의 연착륙 과정을 거쳐 수십 배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심지어는 아직 비트코인조차 꾀어내지 못한 일반 금융 참여자들까지 끌고 와, 정말 탈중앙화 된 금융의 체계에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다. 어느 정도 참여자와 TLV규모가 커지다 보면, 그런 네트워크 안정성이 굉장히 견고해져 공격이 통하지 않는 tipping point=임계질량=특이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크립토 판 크다, 크다 해도 아직 전 세계 인구 중 참여율은 1%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개설된 지갑 기준). 루나 입장에선 기존 씬의 점유율뿐 아니라 새로운 인구 유입으로 충분히 임계점 이상의 몸집을 불려야만 알고리즘의 안정성이 증가한다고 예상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선 앵커는 "고이율 예금"이라는 안전하고 익숙한 콘셉트로 많은 유동성과 참여자를 확보하는 것을 도와주는, next stage를 위한 교두보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난, 테라폼랩스가 기존의 막대한 투자금을 예치 이자로 지급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금융 안정성을 높이면서 테라 생태계 구축을 촉진하려 했던 것을 단순히 폰지 구조로 한탕하려는 꼼수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영리한 플레이라고 생각했다. 현실보다 10배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크립토 씬 안에서도 앵커의 예치금 증가 속도는 정말 기가 찼을 정도니까. 트위터에는 “아내 설득해서 신용대출 풀로 당겨서 앵커에 넣었어요! 가만히 앉아 직장인 월급만큼 받습니다!”하는 사람들이 정말 흔히 보였다.

나는 이 과정을 기발한 마케팅으로 금융 규모의 안정성을 빠르게 늘리는 과정으로 이해했고, 기존 금융의 자본 권력이 크립토(탈중앙화) 신뢰자들에게 전이되는 과정이 가속도가 붙는 것으로 이해하며 아주 ‘낙관적’으로 지켜보고 &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가 결국 안정적인(훨씬 현실적인) 대출/예치 이자율을 갖고, 훨씬 더 커진 테라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예대마진을 점차 트레저리화 하면서, 동시에 시장 참여자에게 분산하는 안정적인 순환 구조를 달성할 '수 도'있다고 기대를 했다.

4. 임계점 도달 전 발가벗겨진 바벨탑의 진실

모두가 고려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는 이렇게 먹을 만한 살점이 투실하게 붙을수록 기존의 거대 자본에겐 더욱더 군침 도는 먹잇감이 된다는 아이러니이다. 그 자본이 DeFi발인지, CeFi발인지는 사실 중요한 건 아닌 듯하다, 이미 그 놀이터의 경계란 수년간 희석되어 왔기에..

이 공격과 붕괴에서 느낀 건 1)크립토 판은 여전히 너무나 규모가 작아, 막대한 압력이 아니라도 쉽게 판을 바꿀 수 있다는 점 2)욕심와 신뢰의 심리를 꿰뚫는 내러티브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점 3)'소위' 중앙화 된 금융이나 기존 질서의 자본 권력은 크립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공격 계획을 짜는 건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1)과 2)는 누구나 알지만 덮어 두었던 진실이고, 내가 무서운 건 3)번 쪽이다.

한동안 최소 최근 3년간 온갖 디파이 프로토콜과 파생 상품이 폭발하며 흔하게 전통 업계에 들리던 말이 있다 - "월가(와 여의도)의 천재들은 다 크립토로 가고 있다"라는 말이다. 나는 이 구문이 돌아다니는 현상 자체가 의미하는 게 새로운 질서의 수립, 자본 권력 이동의 표상이라 생각하고 크립토 씬의 성숙을 가속화하는 좋은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이를 조금만 더 객관적으로 봤다면 크립토와 DeFi가 혁신하려던 기존 금융이 충분히 크립토를 이해하고 공부했으며 그 안의 먹을만한 살코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도 캐치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 공격과 붕괴에서 기존의 금융에서 플레이하던 방식의 응용만으로 얼마든지 프로토콜과 알고리즘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음이 드러났다.

5. One-big scam from one-lunatic man?

나는 도권이 "이 속도라면 거대 자본의 먹잇감으로 공격을 받기 전에 안정성이 보장되는 임계치를 달성할 수 있다, 그들은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것이고 루나와 루나의 신뢰도는 이미 죽이기엔 너무 커졌다"는 자신감(=오만함)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허술하게 대응했고, 허술하게 수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아있는 트레저리를 활용해 새로운 코인을 발행하고, 디페깅 이벤트 전 홀더들을 보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감히 예상하건대 이 새로운 코인은 결코 안정적인 보상안이 될 수도 없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성장할 수도 없다. 루나가 던진 새로운 신념에,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는 루나틱과 그들을 한번 더 털어먹으려고 하는 투기심리가 여전히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코인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를 겪다가 다시 급상승과 급하락을 보여 줄 것이고, 거기서 겨우 탈출하는 사람들과 졸업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또 마지막 순간 허탈하게 바닥에 남은 건 진짜 커뮤니티와 프로토콜을 믿는 사람들, 혹은 재수 없게 마지막에 걸려든 후발주자 일 것이다.

나는 도권이란 사람의 진짜 의도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고,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현실의 그 어느 프로젝트와 회사도 '시작된 의도'로 결과를 평가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군중의 뇌리에 경험적으로 기록되는 건 이러한 사건의 탄생과 종결 중 마지막 평가뿐이고, 그 결과론적 평가와 기준이 후대의 다음 이벤트를 평가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기준과 비교 값이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금 대응하는 방식과 메시지는, 사실 루나 붕괴 이상으로 지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루나의 붕괴가 그저 'Big scam from one-lunatic man'으로 기억되는 게 아닌, 단지 한 개 시도의 실패이자 크립토의 성장통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돌봐야 하는 건 그의 기행과 높은 자아(Ego)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정성과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이다. 그는 지금 그가 며칠간 밤을 새우며 대응하려 했던 노력의 수단들, 실패의 이유를 명료하지만 디테일하게 정리해 공유해야 한다. 과정에서 소모된 비용과 남아있는 예치잔액을 밝혀야 한다. 최대한 이를 활용해 커뮤니티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만약 내가 도권이고, 이 상황을 스캠으로 기억받지 않고 실제로 의미 있는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면, 커뮤니티를 믿는다면, 파운더로서 생태계 조성에 대한 보상으로 축적한 재산에 대해 밝히고 가능한 모든 것을 처분해 ‘루나틱’ 보상안에 포함시킬 것이다. 고급 아파트를 몇 채를 처분해도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액이지만, 그마나 이 정도가 나에 대한 신뢰로 온 재산을 앵커에 유치해 모든 것을 잃은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가능한 공감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바닥 위에 펼쳐진 도박판

루나틱 커뮤니티는 이런 자연재해급 재앙 와중에도 먼저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보였던 것에 대해 사과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의 수년간의 투자와 크립토에 대한 믿음으로 겨우 만든 수십억 자산이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밝히면서 다만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겠노라고 겨우 버틸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루나의 미래를 함께 믿었던 입장에서, 그리고 충분히 그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었던 입장에서, 가슴 아프다. 서로에게 잘못된 신뢰의 확산과 결합을 촉진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 와중에 13일(어제) 낮에 바닥가 0.000002달러를 찍으며 0에 수렴해가던, 지금은 공식적으로 심장이 멈춰버린 프로젝트의 잔재물인 루나는, 시장 가격 0.0005784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커뮤니티의 희망과 믿음이 무너진 그 바닥에서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루나로 신나게 도박 잔치를 하는 걸 보고 있으니 기가 찬다. 수백만명의 신뢰가 피로 물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게 된 와중에 누군가는 하룻밤만에 수백 배 재산을 증식하고 있다.

사실상 루나 사망의 확정 선고가 내려진 12일 저녁, 크립토 펀드와 회사를 운영하는 고인 물 한 분을 만났다. 그는 루나를 일찍이 잘 알고 있었고, 페깅이 깨진 순간 무한 발행되기 시작할 루나에 숏을 치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한다. 그렇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고, 시장원리에 의해 어차피 일어날 일에 대해 잘 알면서도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사실 자체마저 위선자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굳이 그렇게 돈을 벌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게 프로젝트와 커뮤니티, 그리고 크립토 전체의 신뢰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은 어떤 겨울일까.

지난 10년 넘는 성숙의 기간 동안 겨우 그럴듯한 결실을 보여주던 탈중앙화 된 금융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다시 여느 때보다 부상했고, 먹을 만한 살을 뜯으려는 시도는 더 가속화될 거라는 두렵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루나 붕괴는 단기적인 악재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이제 모든 디파이 붐과 다양한 인터 체인 프로토콜과 스테이블 코인 존재 자체가 의문을 제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올해 다가올 크립토 겨울은 매크로 상황으로 인해 촉발된 '건전한 조정'으로 생각해서, 사실 큰 걱정은 안 했었다. 한데 어쩌면 혹독한 테스트를, 아직 투실하게 남아있는 살을 뜯으려는 무수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난 기간 동안 쌓아온 신뢰도를 증명해야 하는 혹한의 겨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다만, 두렵지만, 어느 선배님의 말씀처럼,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함께 겨울을 견딘 사람들이기에... 다음 시즌을 기다려 봐야겠지. Stay Strong Blockch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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