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해력이 아니고 그냥 맥락 문해력이 바닥이다. 학부에서 시험 문제를 사전에 공표하고 오픈북으로 에세이 작성을 시키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오답을 적는 학생이 다수(소수가 아니고)다. 정상적인 맥락 이해력을 갖춘 학생은, 한 학년에 서너 명 정도면 많은 편. 자신이 작성한 글을 정상적으로 낭독할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숨을 쉬어야 하는 곳을 못 찾아서 힘들어 하는 학생도 적잖다. 읽고 쓰고 토론하는 즐거움을 경험해본 사람이 극소수. 창조적 질의 토론이 불가능한 토속 한국어 사회 특유의 불모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비평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진리에 눈을 뜨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과학과 예술로 큰 성취를 거둘 턱이 있겠는가.
머릿속에서 늘 악마의 변호인들이 가상적 주체로서 나의 가설과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입증을 요구하고 있어야 공론장에서 입체적 논쟁이 가능한데, 그게 안되니… 떼로 생사람이나 잡고. ‘반응형 소비자 자아’만 갖고 있는 경우, 생사람 잡는 소리를 펼쳐놓고도 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누려 마땅한 중산층 소비자로서의 능력과 권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끝없이 남탓 사회탓을 한다. 미국의 entitlement 세대도 유사하지만, 맥락을 오독해 생사람을 잡는 일은 드문 편이다. (인종 문화 정치학이 지배하는 다문화 사회에서 맥락을 못 읽으면 정말로 죽는 수가 있으니, 감이 떨어지기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주어진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의 평균 식별률이 47%인데, 한국 학생들은 25.6%에 그쳐 꼴찌였다. 이와 관련이 깊은 “정보가 주관적이거나 편향적인지를 식별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는가”를 묻는 조사에서도 한국은 폴란드·이탈리아·그리스·브라질 등과 함께 평균 이하의 그룹에 속해, 학교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이 밝혀졌다.”
https://m.hani.co.kr/arti/science/future/9954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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