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어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바쁘시겠지만" "번거로우시겠지만" "고생 많으십니다", 웃음표시, 느낌표 등등 일명 '쿠션어'를 쓰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안 쓰는 게 어색하고 찝찝하다. 물론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사람일 때는 쿠션의 부피를 키우고, 반대로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때는 아무래도 쿠션을 덜 의식한다. 문제는 '편하다'는 것이 친분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있지만, 은연중에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높지 않은 경우에도 '편하다'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쿠션어를 덜 쓰고 있거나, 말이 짧아지는 것 같다면 고민을 해봐야한다. 그 사람이 편한 것일까, 만만한 것일까? 나는 오히려 내가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윗 사람으로 대접받을 때 쿠션어를 의도적으로 써야 한다고 믿는다. 본심이 툭툭 튀어나오고, 마음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쿠션어를 이야기하냐면, 최근에 화제가 된 <스타트업은 유치원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읽고서다. 글쓴이는 업무 중에 "안녕하세요"라고 하는게 너무 싫은 나머지, "매일매일 안녕한지 궁금하지 않으니 저런걸로 글자낭비하지 말고 일을 하자"라고 지적을 했다고 한다. 나아가 그는 "감정이 상할까봐 돌려돌려돌려 말하고 계속 기회를 주는 여유가 있는 회사들이 부럽다" "언어폭력의 정의는 '내가 듣기 싫은 말'이 아니다", "감정 상해서 의욕이 없어질까봐 돌려돌려 말하는건 초중고에서 졸업했어야 한다" 등등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쿠션어의 완전한 폐지와 직설적인 언어 사용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쓴이는 '불평등'의 구조를 외면한다. 나와 당신은 그렇게 평등할 수가 없다. 나이가, 젠더가, 직장에서의 직위가, 그밖에 수많은 자원의 차이가 우리를 필연적으로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즉, 쿠션어를 쓸 수밖에 없고, 써야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쿠션어를 더 많이 쓴다. '부드러움', '따뜻함', '섬세함' 등등의 덕목이 자연스레 기대되기도 하거니와, 직장 내 성차별 구조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쿠션어 를 강요하는 문화'가 여성들에겐 분명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쿠션어를 '비효율적'이라고, '어린 행동'이라고 비난한다면, 쿠션어를 안 써도 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것밖에 더 될까.
조직 내에서 유독 남성들이 돌발적이고 '객기'에 가까운 언행을 보인다. 그럼에도 ‘호기롭다' '패기있다'라는 말을 듣거나, 그마저도 듣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애초에 여성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여성에겐 감히 허용되지 않아 상상조차 힘든 행동이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일례로 쿠션어 안 쓰는 남성은 '원래 그런 것'이지만, 쿠션어 안 쓰는 여성은 '싸가지 없다'라며 비난받기도 한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쿠션어를 없애라든지, 쿠션어가 '글자낭비'라든지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지위가, 살아온 이력이 쿠션어를 써야만 더 편하거나 살아남기에 이로웠다고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쿠션어를 쓰지 않고도 잘 살아왔다면 그건 자신이 알게모르게 꽤나 큰 특권을 누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생 때와 기자 초년생 시절, 무모하게 보낸 인터뷰 요청 메일에 굉장히 정성스러운 답신을 보내서 거절의 뜻을 밝힌 유명인들에게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그분들에게는 단순히 일종의 '매뉴얼'을 지키는 행동일 수 있지만, 상세한 거절의 이유와 적절한 쿠션어 사용을 한 답변에 요청이 거부당했음에도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한편에선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본인은 간결하고 효과적인 소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기분만 나쁘게 만드는- 언어 사용, 다른 한편에선 무례한 농담과 대뜸 '짧아지는 말' 같은 것만 듣다보면 그런 친절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살다보면 지적도, 거절도,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도 종종 해야한다. 하지만 그게 마냥 쉽고 자연스러워선 안 된다. 누구도 자신의 노력이 손쉽게 평가받고 재단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효과적이면서도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깃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당연히 이때는 쿠션어를 써야만 한다. 쿠션어는 약자가 강자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자신을 낮추면서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결코 평등하지 않기에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와, 대학생 인턴 기자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의 내 태도는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두 상황에서의 태도 차이를 좁혀가며 살아야 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사실 나의 믿음이라도 할 것도 없다. 요즘엔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산다. 누군가가 보기엔 쿠션어는 불필요한 글자가 소모되는 영혼없어 보이는 문장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더 나은 소통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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