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모티프2/팀&조직&사람&문화

커뮤니티

무말랭이 2022. 3. 17. 07:52


너무너무 긴 글이고, 야밤에 썼다는 것을 감안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쓰자마자 날것 그대로의 글인 점도요.. 같은 내용의 메모장을 이미지로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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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도 있고,
5년 동안 커뮤니티를 운영해온 사람으로서, 정말 누구 한 명에게 단 한 번도 상처 준 적 없고, 실수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처럼 남의 과오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는
제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기에, 나서서 이야기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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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 바닥은 좁디 좁고, 이해관계자는 얽혀있으며, 스타트업 업계에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조심스러웠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도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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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해당 이슈가 터지기 시작할 때 바로 소식을 접하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억울한 당사자야 목소리 높여 문제제기를 하지만 사실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중립의 입장에서 사안을 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의 희망이나 기대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커뮤니티를 운영 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아니면 내 주변의 커뮤니티 리더들처럼, 함께 성장하는 걸 지향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더욱 중요시하고, 그러다보면 때로는 내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커뮤니티를 지키려는 그런 모습들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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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이슈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제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지점들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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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커뮤니티"의 순수성이 해쳐진 점이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진짜 제 주위의 대다수의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본인은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고, 심지어는 본인의 재산을 투자하면서까지 커뮤니티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전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커뮤니티가 비즈니스와 붙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비즈니스화 하는 것을 염두하지 않고 그냥 마음 하나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 시작되기에 그렇습니다.
저희 커뮤니티 같은 경우에도 제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이었기에 시작되었고, 이제는 여성 창업가들을 이해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의 오프라인 모임은 처음에 참가자들의 밥값 딱 그 비용만 받고 진행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저는 이걸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안 했습니다.
아마 지금 다른 커뮤니티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설령 운영자 개인의 계좌로 돈을 받고 운영비가 남는대도 어디에 기부를 하거나 커뮤니티를 위해 환원하는 곳들이 있죠.
사실 커뮤니티 운영자들이라고 해서 안 힘들겠습니까, 무슨 천사들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건 커뮤니티를 시작했을 때의 취지, 마음가짐이 "이익 추구"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흐트러질까봐 그러는 것입니다.
물론 커뮤니티를 베이스로 한 비즈니스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거나 몇백억 투자 유치를 하고 잘 나가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오 커뮤니티도 잘 키우면 비즈니스적으로 저렇게 잘 풀릴 수도 있구나..! 더 좋은 사례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라고 희망을 품기도 하죠.
즉,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애시당초 염두하지 않고 시작한 커뮤니티는 운영자 개인의 비용을 들여가면서, 혹은 운영진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굴러갈 수 밖에 없지만,
우리나라에도 커뮤니티 비지니스를 지향하며 성공하는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한 바, 제대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하면 시장에서도,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조금만 관심 있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커뮤니티의 순수성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면, 법적으로 떳떳하게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할 방법을 강구하고 그렇게 운영을 해왔으면 되었을 것을, 커뮤니티의 좋은 점도 갖고 가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그런 욕심을 버리지 못해 이 사단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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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은 아닐거라는 거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슬펐던 것은.. 저 또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시도와 행보가 보기 좋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진심으로 잘 하기를 바랬고, 잘 되기를 응원했는데, 이렇게 된 점이 정말 슬펐습니다.
마치 내가 지지하던 동료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응원을 하지 말껄.." 같은 내 마음 자체에 대한 의심과 실망 또한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사태가 커지면서 몇몇 커뮤니티 리더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모두가 슬퍼하는 포인트가 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 3자로서 응원하던 마음이 부정당한 기분.. 그게 참 슬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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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뼈아프게 생각하는 건, 이 문제가 맘만 먹으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죠. 많은 시니어들이 현재 이 문제를 업계 전체의 문제, 내 문제, 내 주변 주니어들의 문제로 통감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구요.
누구 하나 초반에 제대로 가이드 했더라면, 하다 못해 "이거 아냐, 이렇게 하면 안 돼" 라는 말을 했더라면 이렇게 되었을까? 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었을까? 이 포인트인건데요. 저도 많은 분들의 글을 읽으며,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도움을 주었던 많은 선배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하여금 "해야만 하는 일을 빼어나게 잘 하는 것보다 하면 안 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게" 도리이자, 오랜동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 자세임을 되새겼으면 합니다.
법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겸업 금지 조항 때문에 회사 다니면서 사업자를 내기가 어려웠다면 코파운더 형식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방법도 분명 있었을테고요, 하다 못해 개인사업자라도 등록을 해놨더라면.. 백번 양보해 법인 운영 쉽지 않고 시작이 어려웠을 수 있지, 그럼 개인사업자라도 해놨더라면.. 싶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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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괜히 죄 없는 DAO가 시작부터 단추 잘못 꿰어진 모습이 되어버린게 정말 안타깝습니다ㅠㅠ
이 부분은 정말.. 저 말고도 다오를 준비하고 있는 많은 커뮤니티 리더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저는 지난 3년 동안 "개인사업자"로 커뮤니티를 운영해왔습니다. 앞에 2년은 사업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커뮤니티에서 남는 돈 자체가 0이었고요 - 모임을 해도 딱 그 모임 참가자 수에 맞는 도시락값만 받거나, 뭐 디파짓 같은 게 있었으면 돌려드리거나, 남는 돈은 즉시 참가자들끼리 나눠 갖거나 했으니까요..
아직 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는 "커뮤니티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자체에 대한 답을 찾기가 저 조차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서서도 길게 이야기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저희를 소개하는 자리에 가면 정말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커뮤니티가 그래서 뭐에요?"부터.. "그니까 그냥 페이스북 그룹인거죠?" 같이.. 커뮤니티를 커뮤니티 자체로 봐주시는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투자자분들도 그랬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잘 버티다가 돈 많은 대기업에서 큰 돈 대준다고 하면 협회 같은 거 만들어서 그렇게 운영하라고, 그게 오래 간다고..
근데 저는 그런 미래를 그리면서 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ㅠ 그리고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언젠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일단 개인사업자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ㅠ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도 이게 비즈니스가 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계속 혼자서 커뮤니티 + 사업자를 운영 하다가 팀원이 생기기 시작한 게 작년 5월이었는데요, 저희가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사실 커뮤니티에서 직접적으로 벌린 부분은 거의 없고요, 그 외의 부분에서 약간의 수익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대, 행사를 아무리 많이 해도 (많이 할 때는 한 달에 8-10개도 했었는데요) 제 이전 월급조차 못 벌곤 했습니다. 이건 제가 수완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요, 행사를 통해서 벌 수 있는 돈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사를 운영한 노하우를 가지고 외부 기관이 행사 운영 대행을 의뢰 할 때 그런 것을 수주 받아서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이건 일이 많아지면 사람도 그에 비례해서 많아져야 하는, 한 마디로 "스타트업 스럽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뭔가 제가 그 사이에서 혁신적인 툴을 만들지 않는 한 그렇겠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정부지원이든 투자자든 설득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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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올해 초에 찾은 게 "DAO"라는 답이었어요. 이거면 진짜 해볼만 하겠다. 우리가 잘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돈도 좀 벌 수 있을 거 같고, 투자도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고 동시에 법인 설립도 3월 안에 할 계획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건 저도 자신 있었기에 팀 세팅도 제대로 했고 현금이 타들어가도 버티는 중이었어요.
게다가 매우 다행히도, 운 좋게도 저희 팀은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기획과 운영에 더 집중해서 DAO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게 이전에 소개해드렸던 "비버밸리" 이구요)
그러면서 동시에 이 생태계에 들어올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떤 다오를 만들까? 저희도 저희의 다오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채 안 되는데 다른 곳들은 어떨지..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트렌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ㅠㅠ 그런데 이렇게 "다오하겠어!" 외치면서 앞서 출발한 주자가 궤도 이탈을 크게 해버리다니요.. ㅠㅠ 이러면 주변에서 보던 사람들이 '아ㅋ 다오 무슨..ㅋ 역시 조별과제는 망하게 되어있지 ㅋ'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너무 속상했습니다 ㅠㅠ 이 생태계에서 건강하게 경쟁하고 좋은 선례들을 만들며 또 더 큰 파이를 만들어 나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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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개인적으로 속상했던 부분들을 털어놓고 나니 속은 좀 후련합니다. 솔직히 하고 싶은 말 정말 많은데 제가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에 고민 정말 많이 했는데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건이 흘러갈지도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건 맞지만요,
커뮤니티를 운영한지 꽤 오래된 사람으로서, 제 사비 털어가면서 운영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저같이 이렇게 존버하고 있는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다오를 통해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한 커뮤니티 생태계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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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익명으로 저에게 메시지 주신 분께 드렸던 말씀을 모두에게 전하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로 상처를 많이 받으셨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반대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음을, 그러니 이 업계나 선배들에게 너무 큰 실망감을 갖지 않기를, 어쨌거나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와 의지가 모이면 또 그 또한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모두가 잘 버틸 수 있게 서로 어깨동무 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부디, 함께, 잘,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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