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모티프2/팀&조직&사람&문화

일에대한 이해

무말랭이 2022. 5. 1. 21:55

사회 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좀 있는데, 일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걸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에 대한 이해도는 단순히 그 분야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나 경험, 자격증 (젊은 사람들 시각에서의 '전문성' 이라고 착각하는 그것들) 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물론 이런 도메인 지식이 쌓여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의사 같은 소수의 직종을 제외하면 별 의미없는 소리다. (이렇게 국가자격증을 통해 철저하게 보호되는 전문직은 그 숫자를 아무리 더해봐야 30만명이 안된다. 우리나라 상용 근로자만 19백만명이다.)

이보다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인데,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시킨 일을 열심히 한다.
(2) 문제를 정의한다.
(3) 문제를 제시한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잘하는 사람도 찾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페이나 대우가 마구 올라가지는 못한다. 편의점 알바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급여가 시간당 10만원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정말 엄청난 알바라서 나중에 편의점 본사에 입사하고 미친듯이 실적 올려서 시간당 100만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늘상 이야기하지만 로또 확률에 커리어를 맡기면 안된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은 지금 해결해야 할 숙제가 조직내에 있고, 그 문제점에 대해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고, 주변을 설득해내며, 실행해낼 능력이 된다는 뜻이다. 이 능력이 충만하면 좋고 유능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의 어젠다를 만들지 못하거나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창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를 제시하는 인력은 회사내에서 미운털이 박히기도 쉽지만 동시에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인력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불평불만분자에 입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성실한 실행이 뒷받침되면 최고의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의 당장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조직이 가야할 방향을 찾는 인력이니까. 창업은 이 인력에게만 적합한 일이다.

젊은 사람들이 미래가 불안정하고, 되는 일도 없고, 아파트 가격은 너무 비싸니 그냥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번 돈은 코인이나 사자는 태도로 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이렇게 살려면 (1)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문제를 정의하거나 제시하는 건 월급받는 일에 대해 몰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일과 물아일체를 하고 싶어져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불행히도 인생이 굉장히 길다. 그리고 경력이 쌓여갈수록 요구되는 능력은 (2), (3)이다. 창업을 하려면 (3)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거지같은 테스트지만 MBTi에서 E 성향을 찾는 것도 사실 '자기주도성'을 갖춘 인력을 기업이 확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2), (3)을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빈약한 월급 주면서 이걸 요구하면 '사장님, 나빠요' 가 맞긴 하다. 그리고 MBTi 는 계속 이야기하지만 혹시나 이 검사에 혹해서 직원 선발에 쓰고 싶은 스타트업 대표가 있다면 차라리 동전을 던지시라. MBTi를 신봉할 정도의 사람에 대한 이해로 회사를 운영하면 절대로 기대하는 인력 안들어온다. 더 심한 말 쓰고 싶지만 참기로 하자.)

젊은 시절 (3)까지 배우기는 쉽지 않고, 이 역량은 타고난 성격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체화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2)는 어떻게든 훈련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훈련을 하려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왜 그것이 문제인지, 어떻게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백날 블라인드에 회사 욕 적는다고 생기는 역량이 아니다.

이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