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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의 실패와 강도남작

무말랭이 2022. 5. 25. 16:33

# 무엇이 리스크를 보지 못하게 하는가?

테라/루나 사태의 범죄 여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문제이고, 제 나와바리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 입니다. 그리고 암호화폐 투자와 무관하신 분들의 루나 & 권도형 대표를 비난, 조롱하는 목소리 이면에 주목할 포인트를 얘기해보려 합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루나에 열광하던 투자자(해시드 김서준 대표, 갤럭시디지털 Novogratz 등)와 '이거 문제있는데?' '잘못하다 터지겠는데?'하며 우려하는 사람들이 공존했습니다.

VC 모 대표님은 테라/루나의 초기 투자참여자로 투자금 20억원의 평가손익이 4조원에 달한 바 있고, 그러니 권도형 대표의 평가손익도 조 단위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사기의도는 없었다는 전제 하에- 저라면 제가 시작한 사업/프로젝트가 3년만에 50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더불어 내 자산도 수조원에 달하게 된다면- '나는 신(God)이다!'와 같은 자만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생태계 창조는 커녕 하다못해 남들보다 일찍 투자한 덕분에 내 자산이 조단위가 된다면 '나의 판단력과 선택은 옳았다'는 확신이 들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주위에서 '야 이거 너무 비싼거 아니야?' '이런건 결함이 있는거 같은데?' 라는 주위에 말에 대해 "응 니 애미" 라고 조롱하거나 "...니들이 잘 몰라서 그래", "쌀때 못사서 배아프냐?" 같은 재수없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2021년까지 금리가 그토록 낮아질 줄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가운데주위를 둘러보면 , 아파트 일찍사서 기껏해야 몇억 또는 십몇억 정도 번 사람들도 기고만장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야 이거 GDP, 소득, PEER 대비 너무 비싸지 않냐' 또는 '과도한 레버리지로 너무 위험..' 따위의 의견을 제시하면 '하.. 니가 잘 몰라서 그래..' '집 안사고 뭐했냐, X신아' 등등 조롱섞인 코멘트가 뒤따르곤 합니다.

부동산으로 기껏해야 억단위 돈을 번 사람들도 이런 식인데 조 단위로 벌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결국 주식쟁이던 부동산 매니아건- "엄청난 금전적 성공에 도취되는 바람에 리스크를 살피는 의견을 무시하다간 저런 일도 터질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자산시장 참여자들이 배워야할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행/대기업들이 비교적 작은 제2금융권/중소기업에 비해 리스크 통제 강도가 훨씬 강한 것도, 규모가 커질수록 리스크 관리도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투자결과가 좋아서 우쭐해지게 되면, 권도형을 떠올려 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지금 내 수익이 테라가 무너지기 전의 권도형을 능가할 정도인가..?"

# 변함없는 원칙,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루나 사태는 총체적 난국이지만, 하락장에 접어들자 '내 그럴줄 알았다' 식의 조롱이 난무하는걸 보면 4년전과 변한게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예전부터 밝혀왔듯 암호화폐를 대하는 개인적인 투자방식은 미국이 금리인하 기조로 가면 LONG- 금리인상 기조로 가면 SHORT 입니다. 가까운 지인들은 제가 바이낸스에서 알트코인들에 얼마나 많이 SHORT을 쳐댔는지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USD와 희소성을 겨루는 자산이라는 편협한 시각이 아닙니다. 은행도 다녀보고 채권시장도 겪어보니 갈수록 저걸 활용할 데가 많아질거라는 기대가 큽니다. 다만 대중의 기대를 충족하기엔 그 속도가 여전히 느리다는게 문제입니다. 그런 와중에 금리가 낮아지면 기대값이 증폭하고, 금리가 오르면 기대값도 무너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매우 다르겠지만 암호화폐의 기술적 위치는 1990년대 초중반의 인터넷, 이더리움은 초창기 넷스케이프 수준이라는 비유가 와닿습니다. 2022년 5월 17일자 슈카월드 "무법자 전성시대"(그림)에서 다룬 1700년대 미국 증권거래소 설립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실물 주식을 탈취하는 강도짓이 흔하게 벌어지고, 판사를 매수해서 주식을 무한발행하고 등등..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저렇게 위험한데 주식투자를 왜 하나?' 라는 생각이 들만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투자를 했던 것은 "높은 수익률로 내 돈을 불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간단히 설명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위험한 암호화폐 투자를 왜 하나?'라는 질문과 결이 비슷해 보입니다.

동국대  박선영(Sunyoung Park) 교수님의 5월 16일 facebook 포스팅을 보면 미국의 banking history 중 1837년부터 1863년까지를 free banking era라고 부르는데 이 기간동안 은행들은 담보만큼 bank note를 발행해서 돈처럼 유통할수 있었고(현재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stablecoin issuer가 난무하는 상황과 매우 유사), 1934년 예금보험이 도입될때까지 끊임없는 bank run이 발생하곤 했다고 합니다. 결국 국가의 공권력 통제가 미흡하던 시절에는 은행도 주식도 너무나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죠.

그렇다면 암호화폐 시장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권력의 통제가 높아져야 한다는 논의로 귀결되는데, 이럴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격 포인트가 '탈중앙화'의 개념입니다. 좌파와 우파가 이분법이 아니듯, 탈중앙화와 중앙화도 이분법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있는데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분들은 '탈중앙화'의 의미를 지나치게 '반정부'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트코인을 두고 '정부가 찍어내는 화폐를 전복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을 한정하면 정부 입장에선 당연히 금지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하여 비트코인 ETF를 상장하고 있는 다수의 선진국들에선 그렇게 편협한 해석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선진국 백인들과 차별화되는 흥선대원군 정신?

전자레인지의 탄생을 다룬 모 유튜버 설명에 따르면-
2차대전 당시 레이더 기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의 신체에 끔찍한 일이 발생했고, 천조국 형님들께선 "오.. 신기.. 이거 잘 활용하면 물건되겠는데?" 하면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전자레인지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정서로는 "야 이런 위험한거 당장 없애버려!" 였겠지만, 미국인들의 기본 정서는 "비록 위험하긴해도 잘쓰면 이롭겠는데?.. 진행시켜!" 였다는 거죠.

올해로 13년차인 비트코인과 고작 6년간 호흡한 저도 가격하락 때마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사기다", "쓸모없다", "미국이 금지시킬거다" 등의 레퍼토리가 지겹기도 한데, 무언가를 계기로 가격이 루나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스탠스는 '이걸 잘 활용해서 이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자'라는게 갈수록 너무나 명확해 보입니다.

비트코인이 제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2014년 미국의 실크로드(마약을 비트코인 받고 팔던 다크웹) 사건입니다. 그렇게나 마약을 혐오하는 미국에서 비트코인의 유일한 쓸모는 마약거래로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비트코인의 시총은 얼마 하지도 않았고 이를 보유, 거래하는 사람도 극소수였으니 금지할거면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었죠.

하지만 그런 괴랄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각종 암호화폐 거래소의 설립, 채굴 등을 일절 금지하지 않고 연구와 규제를 병행해 나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카고상품거래소 상장, 선물ETF 승인, 코인베이스 나스닥 상장, 미국 통화감독청의 stablecoin 승인 등 도무지 금지와는 반대되는 행보들을 이어가는 중이죠.(stablecoin 관련 말이 많은데, 미국 통화감독청에서 정식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였으며 미국의 은행들도 stablecoin을 직접 발행 가능하도록 승인함)

미국만 이런게 아니라 공무원들의 수준이 높은 스위스, 싱가폴 등에선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진행 중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정서가 '이거 다 사기고, 금지시켜야 한다' 라면 소통에 대한 노력없이 단순히 미국, 스위스, 싱가폴 사례를 들어봐야 헛수고일 테지요. 역으로 '무조건 결사반대' 하기 이전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적극적으로 품어가는지는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