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관련 온갖 골칫거리를 다 겪어보고 이제 깨달은 것들. 유학중이거나 이제 인더스트리 갓 나온(올) 사람들을 위한 조언.
1. 신분 문제는 무조건 최대한 빨리 해결하라. 돈을 아끼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 미국에 남는 것으로 인해 기대되는 소득 증가 효과 (+다른 모든 효용들, 이를테면 심적 안정감) 를 생각하면, 신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이는 만 불 정도의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싼 변호사 찾지 말고 최대한 실력 좋은 변호사를 찾아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일을 맡기는 게 좋다. 설령 빚을 져도 신분 문제만 해결되면 어차피 언젠가는 다 갚는다.
두 번째 이유는 직장에 매이지 않기 위해서다. 신분 문제가 완전히 해결돼서 영주권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당신은 회사에 전적으로 매인 몸이다. H1-b 상태에서 해고되면 60일 안에 새 직장을 찾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미국에서 나가야 한다. OPT 상태에서도 60일이고, STEM 연장을 받으면 90일이 더 생기지만 고달픈 건 마찬가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OPT 상태에서는 고용주에 매인 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의무가 있어서 여전히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긴다 (이를테면 고용주, 고용 상태 등 6달마다 보고 의무). 그리고 소속 회사와 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옮기고 싶어도 신분 문제가 있으면 생각보다 잘 안 된다. 특히 소득이 높은 엔지니어들은 이직 기회를 놓쳐서 날리는 돈이 변호사 비용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회사들은 신분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고 싶지 않아한다. 이 점에서는 오히려 큰 회사들이 적극적인데 작은 회사들은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회사들은 대놓고 citizen or gc (green card) holder only 구인공고에 적어놓기도 한다. 이게 현실이다. 또는 신분 문제 불확실성 때문에 큰 회사들도 면접 기회조차 안 주기도 한다. 나도 신분 문제 때문에 면접 기회를 많이 놓쳤고 그 중 상당수는 아주 좋은 회사들이었다.
무엇보다 고용 관계에서 을이 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일이다. 한국 밖이라고 해서 갑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 학교 있을 때 연구 열심히 해라. 나와서도 가능하면 계속 해라.
학계 뿐 아니라 업계 진출 생각이 있어도 마찬가지. 인용 횟수가 충분히 있어야 나중에 NIW (영주권 절차의 일종) 나 O 비자 (전문인에게 주는 3년짜리 취업비자, 연장 가능하다고 알고 있음) 등을 생각할 수 있다. 100회 이상 정도 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리뷰 활동도 도움이 된다 (특히 O visa의 경우). 지금 나도 학계와 끈을 완전히 놓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해 온 덕분에 영주권 관련 plan B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신분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았으면 쉽게 학계와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좋다.
3. 처음에 좋은 회사를 가야 한다.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쁜 회사일수록 직원의 이민 문제 해결에 무관심하고 지원을 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신이 받는 연봉 수준 자체가 이민을 심사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O visa는 명시적으로 이런 항목이 있다). 그리고 초반일수록 연봉도 중요하지만 이민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회사를 골라야 한다. 나는 첫 회사가 contract-to-hire 여서 첫 6달 간 full-time이 아니었다. 그래서 커리어 첫 해에 H1-b 지원을 못 받았는데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다른 회사는 임금 수준이 낮았지만 H1-b를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 거기로 갔어야 했다.
4. 비-전통적인 루트도 고려할 것
최근 H1-b의 당첨률이 많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70%에 달한다고 했는데 요즘은 40%대로 봐야 한다 (이것 때문에 첫 해에 H1-b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큰 오판이었다). 추첨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를 포함 주위 3명 다 작년에 떨어졌는데 그 중 한 명만 2차 추첨에 붙었다. 3번 다 해서 전부 떨어질 확률도 20% 이상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H1-b는 기본적으로 회사에 매인 비자다. 이직을 할 수는 있지만 갈 회사에서 서포트해줘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영주권을 빨리 진행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는 것이 낫다.
연구실적이 있으면 NIW를 진행하면 된다. 5천에서 만 불 정도의 비용이 들고 소요기간은 1년에서 2년 정도다. Work permit도 회사를 통해 진행하는 영주권인 PERM에 비해 빠른 편이다. 회사에서는 구인공고를 내고 그것을 통해 미국인을 고용할 수 없었다는 증거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 자체가 몇 달에서 1년 이상까지 걸릴 수 있다. 그래서 PERM은 요즘 느려진 이민국 일처리를 감안하면 2년 또는 그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 NIW (national interest waiver) 는 이 구인공고를 스킵하는 것이라 당연히 더 빠를 수밖에 없다.
O visa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것은 영주권은 아닌데 H 카테고리 비자에 비해 좀 더 높은 수준의 업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비자다. 학계에서는 연구실적이 월등히 좋은 사람들이 생각해볼 만하다. 월등히라고는 하지만 100회 가까운 인용 실적이 있으면 일단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이 비자의 장점은 처리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인데 빠르면 2-3달만에도 나오는 것 같다. 우선순위가 높고, H비자처럼 추첨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5. 믿을 만한 변호사와 일을 하라
변호사 사무실과 계약을 맺고 입금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을이다. 사무실이 열심히 일처리를 해 주면 고맙지만 아니면 말고다. 주로 일처리가 좋은 사무실들은 그 결과를 다른 곳에 광고해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려 한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력은 더 좋은 평판, 더 많은 고객이지 당신 하나의 안위가 아니다.
놀랍게도(?) 변호사라고 다 믿을만하지 않고 어떤 변호사 사무실은 일처리 능력이나 속도가 매우 떨어진다. 이런 곳과는 일하면 스트레스만 쌓이는데 심하면 웬만하면 처리될 케이스를 ‘추가 증거 요구’ (RFE, request for further evidence) 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연락 안 받고 잠수 타는 것도 기본이다. 멀쩡히 다른 사무실들에서는 된다고 하는 것을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 안 된다고 우기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변호사 사무실이 재수없게 걸려도, 어차피 속 타들어가는 것은 고객이지 변호사 쪽이 아니다. 게다가 변호사들은 법 전문가들이다. 나중에 나쁜 리뷰를 남기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좋은 변호사를 골라야 한다. 앞에서 돈 아끼지 말라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Milemoa나 WorkingUS 등의 웹사이트에 가면 변호사 평판들을 볼 수 있다. 유명한 사무실이 두어 개 있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아무튼 미국에 남을거면 최대한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돈을 절대 아끼지 말고. 가능한 대안들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원에서 연구를 열심해 해서 3개 이상의 논문 (…) 을 내고 NIW를 진행해서 졸업 전, 또는 직후에 영주권을 취득한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
2. H1-b를 지원하는 직장을 첫 직장으로 해서 (지원 여부 절대 양보하지 말것) 바로 H1-b 절차에 들어간다.
3. H1-b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졸업 후 출간 실적이 어느 정도 쌓이면 O1A 비자를 신청한다.
4. 졸업 후에도 쌓인 출간실적을 이용하여 NIW를 진행한다.
신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사람들은 언제나 신분 관련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삶이 안정돼야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그리고 이민 문제는 본인 문제지 절대 회사나 매니저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당신의 이민 문제에 큰 관심도 없고 그들의 우선순위도 아니다 (하루하루 처리할 회삿일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아니면 나를 대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문제에 덤벼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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