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가 피그마를 인수한 이유 (feat. 어도비의 꿈)
간만에 대형 인수 소식이다. 많이 써서, 이익율이 좋아서, 리텐션이 좋아서, XD를 이겨서 다 맞는 이야기지만 어도비가 피그마를 인수한 진짜 이유를 이해하려면 어도비의 꿈을 이해해야한다.
때는 바야흐로 클라우드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까지 올라간다. 드랍박스와 구글드라이브가 간단한 파일 클라우드 기능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슷한 시기 출시한 OneDrive는 싱크의 편의성, 최적화 등 너무 많은 이슈로 별다른 주목을 못 받고 시장을 내주고 만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2011년 Office 365를 출시하고 기업용 협업 솔루션들을 전부 클라우드로 지원해주겠다 선언하면서 전세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써본 사람들은 알지만, 파워포인트, 워드 등 주요 워드프로세서들은 OneDrive에 파일을 저장하는 경우 실시간 공동 협업을 지원한다. 여기에 원격 근무와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바뀌면서 OneDrive는 날개를 달고 드랍박스는 점점 점유율에서 밀리게 된다.
마소의 이 실시간 협업에 큰 뽕을 맞은 회사가 어도비였다. 그래서 어도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ffice 365를 내놓은지 딱 2년 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라는 클라우드 파일관리 시스템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도비 툴들이 단계적으로 실시간 공동 협업을 할 수 있는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
2016년 드림위버를 이은 새롭고 라이트한 위지윅 와이어프레이밍/서비스디자인 도구 Adobe XD가 출시된다. 그리고 어도비는 XD를 클라우드 협업을 도입할 제품으로 선정한다. XD가 협업에 적합한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첫 째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는 하나의 이미지를 작업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미지 작업은 시작과 끝이 한 사람 안에서 끝났었다. 하지만 와이어프레이밍/서비스디자인 의 경우 컴포턴트 별로 다양한 사람이 작업할 뿐 아니라 개발단에서는 개발자가, 기획 단에서는 의사결정자 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실시간 협업의 요구가 훨씬 강했다.
둘 째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레거시 툴들은 무겁고 기능이 풍부했기 때문에 실시간 협업을 도입하기에는 기술적 어려움이 많았다.
어도비 XD는 피그마 뿐만 아니라 어도비 내 타 툴들에 비해 유난히 크래시도 많고 저장 파일에 말썽이 많았다. 그렇게 무거운 3D렌더링도 거뜬히 하는 어도비인데 왜 그랬을까. 심지어 XD는 무료로 배포되었다. 내 뇌피셜이지만 어도비는 OneDrive 수준의 실시간 협업 개발을 할 역량이 내부에 없었고 XD는 지속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던 실험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7년이 지나도록 어도비는 실시간 협업 도구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 피그마는 실시간 협업을 고성능으로 실현시켰을 뿐 아니라 엄청난 트래픽에도 작동하는 것을 검증해 내었다. 같은 해에 시작하여 어도비가 하고 싶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을 해낸 것이다.
그래서 순전히 뇌피셜이지만 이번 어도비의 인수는 모든 어도비 툴들의 실시간 협업을 위한 첫 번째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클라우드 기반 협업 요소기술은 벡터 정보(압축, 재현 등) 기반 소켓 통신이고, 이를 경험적으로 할 수 있는 회사는 한국에서는 ALLO, 센드버드 등이 있다. 물론 우리회사도 아아주 오래전 이 영역에서 돌핀툴즈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피그마의 인수 가격은 호실적 때문이겠지만 인수 자체는 AI영역에서는 큰 성공을 거둔 어도비가 2013년 부터 10년간 꿈꾸었지만 스스로 이루는데 실패한 "클라우드"라는 퍼즐을 산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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