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매출 10억을 넘기며
(부제 :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2014년 스타트업을 알게 되었고,
2016년 서비스 출시를 했고,
2017년 월 매출 1억 원을 찍으며 생존,
2021년 데이팅 앱 국내 최대 이용자로 월 매출 10억 원 달성
오.. 이렇게 적으니 좀 있어 보인다.
근데 사실 가족과는 소원해지고, 친구들은 멸종했다. 심리적으로는 자극적인 도파민을 갈구해 늘 불안하고, 자존감은 높아졌지만 고독함도 심해져 시간당 10만 원 이상의 심리 상담 치료도 했었다. 조직 성장 그래프가 내 심리 상태와 동기화되어 있는 불편함은 그냥 패시브 스킬. 예전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심지어 미대 출신) 이제 그런 낭만 따윈 없다.
조직을 운영하며 많은 응원과 동료애를 받았지만, 상처 역시 많이 받았다. 업사이드 증명의 압박, 갑작스러운 퇴사 요청, 믿었던 지인의 배신과 서비스 카피, 회사에 대한 억울한 리뷰 등.
그렇게 젊은 날의 뜨거운 도전이었던 스타트업은 내 인생을 집어삼켰다.
그간 3번의 인수 제안도 있었다. 위 고난들을 벗어던지고 지금 사는 월세를 탈출해 청담동 오피스텔에, 인스타에 서피비치 호캉스 사진 올리고, 데일리청담 룸 하나 통째로 빌려 Girl들에게 플러팅하며 남 부럽지 않게 살 만한. 웃긴 건 3번의 제안 모두 단칼에 거절했다.
이런 불안과 고독을 겪으면서, 난 왜 인수 제안도 거절하며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응? 재원아?
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좀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난 연애고자였다. 키 작고 못생겼었고, 집도 넉넉지 않아 수중에 돈도 없어 자존감도 낮았다. 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25살까지 사랑을 못 했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데 누굴 사랑하리. 그래서 얼마나 사랑이 어려운지 안다.
혹자는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고. 퍼킹. 말은 쉽다. 말은 진짜 쉽다. 웃긴 건 그런 혹자들은 다 잘난 애들이다.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그럼 역으로 그 혹자들에게 키 작고 못생기고 변변치 않은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풉. 비웃겠지. 그래서 내가 사랑을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마음 힐링과 자존감 치료.. 이딴 게 아니고 성형이었다. 눈코입에 키까지. '미녀는 괴로워' 남자 버전이 있다면 나였다. 돈과 시간이 필요해 졸업은 늦어졌지만, 덕분에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제야 사랑을 할 수 있었다.
내 35년 삶 중 최고의 행복은 사랑이었다. 그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들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내가 느꼈던 그 사랑의 행복을 내 과거만큼 힘들었던 사람들을 포함해 누구나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2명 중 1명이 '외로움이 내게 자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라고 답변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남녀가 서로 편을 가르고 갈등하며 혐오하는 이 세상이, 사랑할 이유보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쉬운 이 세상이 제발 좀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대체 어떻게?
사랑을 위해 사랑은 좀 평범해질 필요가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 포르노는 오늘도 우리를 속인다. 하루아침에 재벌남을 초월한 외계에서 온 그대가 나를 선택해 똥오줌도 누지 않고 나만 바라봐 줄 거라고. 사랑은 종교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판타지라고. 근데 사랑이 꼭 그렇게 대단하고 특별해야 할까?
육아도 결혼도 의무가 아닌 이 시대에 사랑은 그냥 엔터테인먼트여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사랑이 복잡하고 어려워질수록 그건 없는 사람은 경험할 수 없고 언제든 페라리에 태워주며 5성급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잘난 소수들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사랑은 수목드라마가 아니라 인스타 스토리처럼 쉽고 편해져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조금 덜 책임지고 조금 덜 의존적이어야 한다.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내 행복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 사랑은 엔터테인먼트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즐거우면 된다.
같은 선상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즐거움을 대략 5점으로 볼 때 세상 그 무엇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랑의 즐거움은 대략 100점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월 14,500원만 내면 된다. So easy. 그 비용은 1점. 반면 사랑은 그 난이도와 비용이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운명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건 드라마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그만큼 통제불가한 영역이라는 뜻)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모르고, 알아도 찾을 수 없으며, 찾아도 연락할 수 없으며, 연락해도 날 안 좋아한다. 설사 좋아해서 이어져도 관계 유지에 감정과 물리적 비용이 들며, 경쟁자들과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 그래서 그 비용 역시 100점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압도한다.
(이 개념으로 보면 '세상에 남자가 35억 명이나 있는데 내 짝 하나 없겠어?'란 말은 틀렸다. 세상에 남녀가 적어서 사랑이 힘든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힘든 것이다. 남자 35억 명의 선택지는 너무 많고, 반대로 당신의 경쟁자도 35억 명이나 있다. 이 관점에서 선택지와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성애가 더 사랑하기 쉬울 수 있다. 피임마저 패시브 스킬)
결론적으로 사랑은 즐거움이 100점이지만 그 비용 역시 100점으로 1점. 넷플릭스는 즐거움 5점, 비용 1점으로 5점의 가치를 지니기에 사람들은 사랑을 포기하고 집에서 넷플릭스 보는 걸 선택한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선, 사랑의 즐거움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결정적으로 큰 불확실성을 포함한 그 비용을 줄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게 사랑의 미래다.
그 사랑의 미래는 채널, 관계, 대상의 3가지 영역에서 진화하고 있다. 과거 부모님이나 친구, 지인들의 소개로 이어지던 만남의 채널은 온라인 데이팅 앱이나 소셜 네트워크로 만남의 비용을 크게 줄였다. 글램을 통해 매칭된 숫자만 300만이 넘는다(PPL). 더 나아가 라이브스트리밍을 통해 누구든 지금 바로 얘기할 수 있다. 소위 '방송 플랫폼'의 발달은 매력적인 한 명의 순간을 여러 명에게 복제함으로써 '연애'의 대체재가 되기도 한다.
관계 역시 다양해질 것이다. 연애 외 FWB(당사자들은 그렇게 정의하기 싫을진 몰라도)나 남사친여사친 등의 회색 영역이 증가하고 있다. 어장관리라는 말이 얼마나 낡았는지 짐작해 보라. 또한 결혼 없이 동거하며 육아도 가능한 제도인 팍스를 통해 이미 프랑스 등 유럽 10개국은 혼외출산이 혼인출산 수를 넘어섰다.
대상 역시 동성애를 포함한 LGBTQ에 대한 사회적인 설득 비용 역시 떨어지고 있다. 서양은 이미 이를 넘어서 다자간 연애인 폴리아모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랑의 대상은 AI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랑의 분자/분모는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압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로봇과 사랑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 로봇의 가격이 일반 직장인 3개월 치 월급(할부로 구매 가능한 시점)쯤 되면 특이점이 오지 않을까.
이 세상을 사랑스럽게 바꾸기 위해 할 것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이렇게 사랑의 분모를 낮추다 보면 자존감이 낮고 못났던 과거의 나 같은 연애고자들은 없어지고 누구나 사랑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존의 혁신을 통해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30분 안에 교촌치킨 허니콤보가 문 앞으로 오는 세상이다. 몇십 년 후엔 사랑의 혁신을 통해 사랑 역시 이렇게 쉽게 채워졌으면 한다. 그날이 오면 배고픔을 잊고 사는 우리처럼, 외로움을 잊고 사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P.S 4년 만에 10배 성장했으니 2025년에 월 매출 1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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