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페북에는 가벼운 것만 올린다. 부쩍 늘어난 말의 홍수의 시대에 숟가락 하나 더 얹고 싶진 않아서.
선거 기간 정치 포스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보게 되는데,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propaganda 느낌이 드는 글은 종종 불편하다. 그래서 정치색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지 말자는 의견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적어도 이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유로운 생각의 발화를 자제하자는 표현이 자기 모순적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사람의 모든 말과 글은 방향성을 갖고 있다. 작게는 읽고 듣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크게는 행동 더 나가서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말과 글은 필연적으로 이념적이고 선동성을 띌 수 밖에 없다. 말이 도착하고 싶은 목적지가 있는거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startup scene 에 있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안좋을 땐) propagandist 이거나 (좋을 땐) evangelist 라고 생각한다. 창업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희소가치가 높은 행위 (행위라는 말로만 표현하기엔 의미를 다 담기 어렵지만)이자 동시에 매우 위험한 모험을 의식적, 때론 무의식적으로 유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성공한 창업가들은 댓글 하나만 달아도 그 넘치는 포스로 사람을 유혹하고, 선견지명 있는 투자자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아 그 말을 따르면 나같은 무지렁이도 언젠가 저들의 반열에 올라설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열정, 성장, 속도, 열망, 자기주도성, a better world! 업계에 이제 막 들어온 들떠있는 새내기들이 외치는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모든 단어들은 성공한 창업가나 명망있는 투자가들의 어록 속에 이미 빼곡하게 쌓여있는 것들이다. 일가를 이룬 스포츠 스타들나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릴때 누굴 보면서 자랐어요' 같은 식상한 레파토리처럼.
이 바닥에서 말과 글의 힘이 발휘되는 영역은 단지 창업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가벼운 페붓 댓글 하나를 통해서도 특정한 시장이나 기술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장이 뜰거야. 저 기술이 미래지. 그 결과 누군 인공지능 창업을 하고 누군 크립토 씬으로 다이빙하고, 누군 동학 개미가 된다. 이 시간에도 뜨거운 열망으로 어린 양들을 전도하는 선배들 덕이다. 물론 나도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학생들 만나는걸 좋아하고, 보람으로 삼는 입장에선 아마 누구보다 전도 혹은 선동을 많이 했으리라.
그래서 최근 몇년간 머리 속 한켠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화두는, 내가 혹은 우리가 투자하는 이 기술과 시장이 과연 우리 사회 전체를 향상시키는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엄청난 자본이 몰리는 crypto 나 AI 와 같은 cutting edge 의 영역들, 기술 숙성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직까지의 crypto 는 자본 이익에 밝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가까워 보이고, 오히려 영끌해서 투자했다가 생고생하는 젊은 친구들만 눈에 크게 띈다. 이 바닥에서 나오는 대박 성공의 신화가 사회 보편적인 가치로 연결되는건 아직은 유니콘보다 찾기 어려운 환상의 동물이다.
AI 는 어떤가. 극강의 자동화를 통해 인류를 자유롭게 해주고 기본소득 시대의 개막에 대한 기대감까지 불을 지폈지만, 우리는 AI 가 가져온 최악의 참사를 최초로 경험하는 세대인지도 모른다. 지난 10여년간 IT 기술의 집약체였던 social media 는 전세계 모든 세대, 모든 계층 속에서 confirmation bias 를 극단화하는데 성공했다. Thanks to Curation. 2년전 social dilemma (Netflix)는 이를 civil war 라고까지 표현했었는데, 총칼만 안들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이미 그 속에서 살고 있지 않나. 정 모르겠으면 당장 네이버 대선 뉴스와 댓글을 보면 된다.
내가 여기에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언론사 인터뷰, 대학교 강연, 컨퍼런스 패널,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 우리 가족과 친척들. 작건 크건 내가 말과 글로 의도를 전하는 행위들은 모두 포함된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엄밀한 두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신념 행위를 믿고 계속 하는 것이고, 남은 하나는 말을 아끼는 것. 그런데 지난 2년 동안은 그동안의 신념을 믿긴 했지만 말은 아끼는 박쥐(..)같은 행보를 취했다. 대신 사람들을 관찰했다. 누가 선동가이고 누가 전도사인지. 이 차이는 생각보다 결정적이진 않았지만, 유의미한 기준을 찾아내는데는 성공했다. 일단은 나만의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이 글의 '방향성'은 선동가와 전도사를 구분하는 것에 있지 않으니 말하자면, 선동가이건 전도사이건 간에 시장, 기술, 창업에 대한 자기 신념을 전하는데 있어 자유롭지 말아야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 전파의 결과가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다양한 생각들이 끓어오르는 melting pot 을 만드는게 오히려 이바닥 생리와는 아주 잘 맞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생각하는 startup business 는 혼돈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 선동가이자 전도사다. 부인하지 말자. 정치는 예민한 주제지만, 시장, 기술, 창업, 자본 등도 사람에 따라 매우 예민할 수 있는 주제다. 사실상 감정이나 가치 중립적인 주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뱉어내고 그걸 받아들인다. 정치가 identity 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 예민하다는 이론(?)도 있지만 한 인간의 identity 가 정치 성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말은 사람을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리다. 심지어 시장, 기술, 창업과 같은 주제 또한 이념적 관점을 얼마든지 투영해서 정치 어젠다로 만들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중립과는 거리가 멀다. 궁금하면 decentralization 이 진보와 보수 진영 각각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보면 된다.
그래서 정치적 색채가 강하거나, 다른 것이 표현의 자제 및 금지로 이어지는 논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 마음에 안들면 페북이 친절하게 준비한 페삭, 언팔 기능을 사용하면 되고)
사실, 이 글도 작건 크건 force 와 vector를 갖고 있다. 고로 이글이 propagandist 의 사악한 소행인지 evangelist 의 읽을만한 꺼리인지는 보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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